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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슈피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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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라디미르 슈피들라는 체코의 정치인으로, 1976년 프라하 카렐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벨벳 혁명 이후 체코 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체코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중에는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유럽 연합 집행위원으로 고용, 사회 정책, 기회 균등 담당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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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슈피들라
블라디미르 슈피들라
2007년의 슈피들라
기본 정보
이름블라디미르 슈피들라
원어 이름Vladimír Špidla
발음ˈvlaɟɪmiːr ˈʃpɪdla
출생일1951년 4월 22일
출생지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현재 체코 영토)
서명
학력
출신 학교카렐 대학교
정당
소속 정당체코 사회민주당
주요 직책
대통령바츨라프 하벨
바츨라프 클라우스
임기 시작2002년 7월 12일
임기 종료2004년 8월 4일
전임자밀로시 제만
후임자스타니슬라프 그로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집행위원장조제 마누엘 바로수
임기 시작2004년 11월 22일
임기 종료2010년 2월 9일
이전 담당자안나 디아만토풀루
스타브로스 디마스 (고용 및 사회 문제)
다음 담당자라슬로 안도르 (고용, 사회 문제 및 통합)
체코 대통령 권한대행
공동 권한대행루보미르 자오랄렉
임기 시작2003년 2월 3일
임기 종료2003년 3월 7일
전임자바츨라프 하벨
후임자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사회민주당
임기 시작2001년 4월 7일
임기 종료2004년 7월 26일
전임자밀로시 제만
후임자스타니슬라프 그로스
체코 정부
총리밀로시 제만
임기 시작1998년 7월 22일
임기 종료2002년 7월 12일
전임자스타니슬라프 볼라크
후임자즈데네크 슈크로마흐
체코 하원
임기 시작1996년 1월 1일
임기 종료2004년 8월 31일

2. 생애

프라하에서 태어나 1976년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졸업했다.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체코 사회민주당(ČSSD) 창당 과정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고향인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에서 지역 정치를 시작했고,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지역 노동청장을 지냈다.

1996년 체코 의회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2006년까지 활동했으며,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밀로시 제만 내각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1년 4월 7일 ČSSD 대표(의장)로 선출되어 2004년 6월 26일까지 당을 이끌었다.

2002년 7월 12일부터 2004년 8월 4일까지 제4대 체코의 총리를 지내며 체코유럽 연합(EU) 가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의 부진한 결과로 인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총리직 사임 후에는 2004년 11월 22일부터 2010년 2월 9일까지 유럽 집행위원회에서 고용·사회 정책·기회 균등 담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체코 국내 정치로 돌아와 2010년과 2022년 상원 선거, 2021년 총선 등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는 못했다.[3][5][7] 2014년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두 번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취미는 크로스컨트리와 마라톤 달리기이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2. 1. 초기 생애 및 학업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1976년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졸업했다. 그의 학위 논문 제목은 ''Založení 주노스트 뱅크''(기업은행 설립)이었다. 졸업 후에는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적 의무를 거부했기 때문에 여러 임시직을 포함한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이 시기에 고고학자로도 활동했다.

2. 2. 정치 경력

1976년 프라하 카렐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1989년 벨벳 혁명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여 체코 사회민주당(ČSSD) 창당 과정에 참여했다. 고향인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에서 지역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지역 노동청장을 지냈다.

1996년 체코 의회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2006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으며, 이 기간 동안 당내 입지를 넓혀 1997년에는 ČSSD 법정 부의장, 2001년 4월 7일에는 당 대표(의장)로 선출되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밀로시 제만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역임하며 국정 경험을 쌓았다.

2002년 7월 12일, 총선 승리 후 ČSSD를 중심으로 한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제4대 체코의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 체코유럽 연합(EU) 가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의 부진한 결과로 인해 당내 지지 기반이 약화되어 같은 해 8월 4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총리직 사임 후에는 유럽 연합 무대로 활동 영역을 옮겨, 2004년 11월 22일부터 2010년 2월 9일까지 유럽 위원회에서 고용·사회 정책·기회 균등 담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체코 국내 정치에 복귀하여 2010년과 2022년 상원 선거, 2021년 총선 등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는 못했다.[3][5][7] 2014년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을 맡기도 했다.

2. 2. 1. 초기 정치 활동

1976년 프라하 카렐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고향인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에서 지역 정치를 시작하며 재건된 체코 사회민주당(ČSSD, 당시 명칭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는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 지역 노동청장을 역임했다.

1992년 ČSSD 간부회원이 되었고, 1996년 체코 의회 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어 2006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1997년 3월 ČSSD 법정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98년 7월 22일부터 2002년 7월 12일까지 밀로시 제만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2001년 4월 7일에는 전임 의장 밀로시 제만의 사임 후 ČSSD 대표(의장)로 선출되어 2004년 6월 26일까지 당을 이끌었다.

2. 2. 2. 당내 활동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체코 사회민주당(ČSSD, 당시 명칭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으며, 고향인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에서 지역 정치를 시작하며 당에 합류했다. 1992년 ČSSD 간부회원이 되었고, 1997년 3월에는 당의 법정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01년 4월, 전임 의장인 밀로시 제만의 사임 이후 ČSSD 의장으로 취임하여 2004년 6월 26일까지 당을 이끌었다.

1996년 처음으로 체코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2006년까지 활동했으며, 1998년 7월 22일부터 2002년 7월 12일까지 밀로시 제만 내각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7월 12일, ČSSD 대표로서 총리로 임명되어 기독교민주연합-체코슬로바키아인민당 및 자유연합-민주연합과의 연립 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ČSSD와 연정 파트너들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당내 지지 기반이 약화되자, 2004년 6월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26일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그의 후임으로는 같은 당 소속의 스타니슬라프 그로스가 취임했다.

슈피들라는 강력한 반공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ČSSD 내에서는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었다. 외교적으로는 유럽 연합 통합을 지지하는 강력한 친유럽주의자였다. 총리직 사임 후 유럽 위원회 집행위원직을 수락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황금 낙하산"이자 당과 체코 정치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유럽 집행위원으로서는 유럽 사회 모델 유지, 일자리 창출, 유럽 세계화 조정 기금(EGF) 설립 등을 추진했다.[1][2]

유럽 집행위원 임기 종료 후에도 당 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 선거에서 ČSSD 후보로 체코 상원 의석에 도전했으나 시민민주당 후보 토마시 지르사에게 패배했다.[3] 2014년에는 ČSSD 소속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했다.

2021년 의회 선거에서는 ČSSD 프라하 지부 후보로 지명되었으나[4], 당이 5% 의석 확보 기준을 넘지 못하면서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5] 2022년에도 프라하 11 선거구에서 상원의원에 도전했지만 8.39%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쳐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6][7]

2. 2. 3. 정부 요직 역임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고향인 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에서 지역 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재건된 체코 사회민주당(ČSSD, 당시 명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에 합류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는 지역 노동청장을 지냈다.

1992년 ČSSD 간부회원이 되었고, 1997년 3월 당의 법정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96년 체코 의회 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어 2006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1998년 7월 22일부터 2002년 7월 12일까지 밀로시 제만 내각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1년 4월 7일, 전임 의장 밀로시 제만의 사임 이후 ČSSD 대표(의장)로 선출되어 2004년 6월 26일까지 당을 이끌었다. 2002년 총선 승리 후, 같은 해 7월 12일 ČSSD와 소수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체코슬로바키아인민당, 자유연합-민주연합과의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제4대 체코의 총리로 임명되었다. 총리 재임 중이던 2003년 2월 2일부터 3월 7일까지는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임기 만료 후 새 대통령 선출 전까지 체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기도 했다. 그의 정부는 유럽 연합(EU) 가입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달성했으나, 증가하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개혁안은 야당으로부터 지나치게 온건하며 세금 인상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정 내부의 긴장과 의회 내 근소한 의석 차이로 인해 정부는 더 과감한 조치를 추진하기 어려웠다.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ČSSD와 연정 파트너들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당내 지지 기반이 약화되었고, 결국 2004년 6월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혔으며 7월 26일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후임 총리로는 당시 내무부 장관 겸 부총리였던 스타니슬라프 그로스8월 4일 취임했다.

총리직 사임 후, 슈피들라는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어 2004년 11월 22일부터 2010년 2월 9일까지 고용, 사회 정책 및 평등 기회 담당 유럽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집행위원직 수락을 정치적 '황금 낙하산'이자 ČSSD와 체코 정치에 대한 배신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집행위원으로서 슈피들라는 유럽 사회 모델의 유지를 강조하며, 유럽이 "사회 정의, 평등, 모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1] 그의 주요 정책 목표는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 창출", "확장의 이점 활용", "인구 고령화의 영향 대응", "포용적인 사회 촉진" 등이었다.[1] 또한 유럽 세계화 조정 기금(EGF)을 유럽 사회 기금과 유사하게 활용하여 기업들이 세계화의 영향에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2]

이후에도 슈피들라는 체코 정치에 계속 참여했다. 2010년 선거에서는 체코 상원 의석에 도전했으나 시민민주당 소속 현직 의원 토마시 지르사에게 패배했다.[3] 2014년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2021년 의회 선거에 ČSSD 후보로 프라하 지역구에 출마했으나[4], 당이 5% 의석 확보 기준을 넘지 못해 낙선했다.[5] 2022년 체코 상원 선거에서는 프라하 11 선거구에서 다시 상원의원에 도전했지만[6], 8.39%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쳐 결선 투표 진출에 실패했다.[7]

기간직책소속/정부비고
1991년 - 1996년인드르지후프흐라데츠 노동청장-
1996년 - 2006년체코 의회 하원 의원체코 사회민주당 (ČSSD)
1997년 3월 - 2001년 4월ČSSD 법정 부의장체코 사회민주당 (ČSSD)
1998년 7월 22일 - 2002년 7월 12일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밀로시 제만 내각
2001년 4월 7일 - 2004년 6월 26일ČSSD 대표 (의장)체코 사회민주당 (ČSSD)
2002년 7월 12일 - 2004년 8월 4일제4대 체코의 총리슈피들라 내각 (연립 정부)유럽 연합 가입 달성
2003년 2월 2일 - 2003년 3월 7일체코 대통령 권한 대행-바츨라프 하벨 임기 만료 후
2004년 11월 22일 - 2010년 2월 9일유럽 위원회 고용·사회 정책·기회 균등 담당 위원유럽 연합프로디 위원회, 바로주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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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4. 총리 재임 (2002년 - 2004년)

2002년 7월 12일, 슈피들라는 체코 사회민주당(ČSSD)과 소수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체코슬로바키아인민당, 자유연합-민주연합 간의 연립 정부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 중 체코유럽 연합(EU)에 가입하였다.

2003년 2월 2일부터 3월 7일까지는 체코 대통령의 임기 만료 후 의회가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전까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기도 했다. 슈피들라 정부는 증가하는 재정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야당으로부터 개혁안이 지나치게 온건하며 지출 삭감보다는 세금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연정 내부의 긴장과 의회 내 근소한 다수 의석 확보로 인해 정부는 더 과감한 조치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소속 정당과 연정 파트너들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당내 지지율이 하락하자, 슈피들라는 2004년 6월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으며, 7월 26일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어 당시 내무부 장관 겸 부총리였던 스타니슬라프 그로스8월 4일 후임 총리로 취임했다.

2. 2. 5. 유럽 연합 집행위원 (2004년 - 2010년)

2004년 6월 총리직에서 사임한 후, 슈피들라는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었다. 그는 2004년 11월 22일부터 2010년 2월 9일까지 유럽 위원회에서 고용, 사회 문제 및 평등 기회 담당 집행위원을 역임했다.

집행위원으로서 슈피들라는 유럽 사회 모델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유럽이 "사회 정의, 평등, 모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 그의 주요 정책 목표는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 창출", "확장의 이점 거두기", "인구 고령화의 영향 해결", "포용적인 사회 촉진" 등이었다.[1] 또한, 그는 유럽 세계화 조정 기금(EGF)을 유럽 사회 기금과 유사하게 만들어 기업들이 세계화의 영향에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2]

일각에서는 그가 유럽 집행위원직을 수락한 것을 두고 정치적 경력 연장을 위한 "황금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슈피들라는 2010년 2월 집행위원직에서 사임했다.

2. 2. 6. 총리 퇴임 이후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체코 사회민주당(ČSSD)과 연정 파트너들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당내 지지율이 하락하자, 슈피들라는 2004년 6월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혔고 7월 26일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내무부 장관 겸 부총리였던 스타니슬라프 그로스가 8월 4일 취임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슈피들라는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어 2004년 11월 22일부터 고용, 사회 문제 및 평등 기회 담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유럽 사회 모델 유지를 강조하며 유럽이 "사회 정의, 평등, 모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1] 그의 주요 정책은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 창출", "확장의 이점 활용", "인구 고령화 영향 대처", "포용적 사회 증진" 등이었다.[1] 또한 기업들이 세계화의 영향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유럽 세계화 조정 기금(EGF) 설립을 지원했다.[2] 그러나 그의 유럽 집행위원직 수락은 일부로부터 "황금 낙하산"이자 ČSSD와 체코 정치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슈피들라는 2010년 2월 집행위원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슈피들라는 체코 국내 정치 복귀를 시도했다. 2010년 상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시민민주당 소속 현직 의원 토마시 지르사에게 패배했다.[3] 2014년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2021년 의회 선거에서는 ČSSD 프라하 지부 후보로 나섰으나[4], 당이 5% 의석 확보 기준을 넘지 못해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5] 2022년 체코 상원 선거에서는 프라하 11 선거구에 다시 도전했지만[6], 8.39%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쳐 결선 투표 진출에 실패했다.[7]

3. 정치적 성향 및 평가

슈피들라는 벨벳 혁명 이후 재건된 체코 사회민주당(ČSSD)에 합류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당내에서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동시에 강력한 반공주의자로도 알려졌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유럽 연합과의 더 깊은 통합을 지지하는 확고한 친유럽주의자이다.

1997년 ČSSD의 법정 부의장이 되었고, 2001년에는 밀로시 제만의 뒤를 이어 당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밀로시 제만 정부에서 제1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총선 후, ČSSD와 기독교민주연합-체코슬로바키아인민당, 자유연합-민주연합 간의 연립 정부를 이끌며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증가하는 국가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야당은 이 개혁안이 지출 삭감보다는 세금 인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온건한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연정 파트너 간의 이견과 의회 내 근소한 과반수 의석 때문에 정부는 더 과감한 개혁 조치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ČSSD와 연정 파트너들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당내 지지 기반이 약화되었고, 결국 슈피들라는 2004년 6월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스타니슬라프 그로스가 임명되었다.

총리직 사임 후, 슈피들라는 유럽 집행위원회의 고용, 사회 문제 및 평등 기회 담당 집행위원으로 지명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그가 체코 국내 정치를 외면하고 소위 '황금 낙하산'을 택한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집행위원으로서 슈피들라는 유럽 사회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유럽이 사회 정의, 평등,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1] 그의 주요 정책 목표는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 창출', 'EU 확대의 이점 활용', '인구 고령화 문제 해결', '포용적인 사회 증진' 등이었다.[1] 또한 유럽 세계화 조정 기금(EGF)을 유럽 사회 기금과 유사하게 활용하여 기업들이 세계화의 영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2] 그는 2010년 2월까지 집행위원직을 수행했다.

유럽 집행위원 임기를 마친 후에도 슈피들라는 체코 정치 무대에서 활동했다. 2010년 상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시민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3] 2014년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21년 총선[4]과 2022년 상원 선거[6]에도 출마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5][7]

4. 개인사

슈피들라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에서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결혼에서 두 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그의 취미는 크로스컨트리와 마라톤 달리기이다. 그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만, 영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여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 자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Vladimir Spidla - EU Commissioner for Employment, Social Affairs and Equal Opportunities http://ec.europa.eu/[...]
[2] 웹사이트 European Globalisation Adjustment Fund http://ec.europa.eu/[...]
[3] 웹사이트 Špidla po prohře: Nemusím brát každou práci, budu přednášet a psát http://zpravy.idnes.[...] 2010-10-23
[4] 웹사이트 Návraty v ČSSD: Po Škromachovi míří na kandidátku expremiér Špidla https://www.seznamzp[...]
[5] 웹사이트 Vítězství pravice otevírá prostor pro politiku sociální demokracie, předpovídá Špidla https://ct24.ceskate[...] Česká televize
[6] 웹사이트 Ještě pořád mám sílu, řekl Špidla, který kandiduje za ČSSD do Senátu https://www.idnes.cz[...]
[7] 웹사이트 Vítězové a poražení voleb: Slaví Novotný či Vandas. Neuspěl Špidla, v cílové rovince padl Váňa https://cnn.iprima.c[...] Prima F. T.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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